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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우리나라 시각장애아 교육의 발달_박두성과 훈맹정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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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김나리 | 작성일 | 2014-03-05 오후 1:58:42 | 조회수 | 4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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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성은 1888년 3월 16일 경기도 강화군 교동도에서 태어나 1899년 강화도 보창학교를 거쳐 한성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어의동 보통학교 교사로 취임했다. 그 후 1913년 제생원 교사로 임명되어 맹교육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당시 평양에는 홀 여사가 만든 4점형 한글점자(이후 평양점자라 함)가 사용되었고 제생원에서는 일본점자(6점형)가 사용되었다. 6점형 점자가 4점형 점자보다 우수하다는 것을 인식한 맹학생들은 1920년 일본점자 3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박두성 선생에게 6점형 한글점자를 제정하여 줄 것을 요청했다.(이종화, 1973) 평양점자는 하나의 자음이나 모음을 표기하는데 두 칸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고, 초성 자음과 종성 자음이 구별되지 않아 문자로 큰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박두성은 홀 여사에게 6점형 한글 점자를 함께 제정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홀 여사는 일본어 점자까지 4점으로 제정하여 보내면서 4점형 점자를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므로 박두성은 1920년 제자들과 함께 ‘조선어 점자 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6점형 한글점자를 제정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3ㆍ2점자를 제정했으나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아 다시 연구를 계속 했다. 박두성 선생은 1926년 8월에 한글점자를 제정하여 사용해 본 결과 그 우수성이 인정되어 1926년 11월 4일에 ‘훈맹점음’이란 이름으로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일반 맹인들에게 조선어, 명심보감, 편지틀, 불쌍한 동무 등 많은 도서를 점역하여 도서관 사업을 했고 점자를 모르는 맹인들에게는 점자판과 점자해설서, 조선어 독본을 보내어 통신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문맹퇴치에 심혈을 기울였다. 1935년 48세로 제생원을 은퇴한 후에도 자택에 점자 인쇄시설을 갖추고 성경책과 다른 점자도서를 출판하여 맹인들에게 대출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 맹교육에 가장 빛나는 업적을 남긴 박두성은 1963년 8월 25일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시인 노산 이은상은 그를 가리켜 ‘맹인의 세종대왕’이라고 칭송했다.
[참고문헌] 임안수(2005), 「시각장애아 교육」, 대구 : 도서출판 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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